자동차

해발 2,369m 산 위에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고?

더로드쇼 2023. 2. 11. 19:57
반응형

안녕하세요, '더로드쇼' 김종훈입니다. 

 

자꾸 떠나고 싶어지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그동안 갑갑한 나날을 보냈으니까요. 팬데믹이다, 겨울이다 해서 한동안 움츠러 들었죠. 물론 그 사이 훌쩍 떠나기도 했지만, 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 없다면 해소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죠. 지난 여행 사진을 들춰보는 겁니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이후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면 당시 사진을 자주 봤거든요. 볼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 순간으로 금세 빠져들어요. 그만큼 인상이 강렬했으니까요.

 

그래서 예전 경험을 지금 다시 돌아볼까 합니다. 당시 '핀카'라는 곳에 횡단기도 연재했는데 사라졌더라고요.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이곳에도 차곡차고 쌓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니까 보물창고를 뒤적이려고 합니다.

 

횡단기는 봄바람 불면 하나씩 풀어내기로 하고, 우선 횡단하며 우연히 만난 자동차 박물관 얘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그로스글로크너에서 만난 박물관 얘기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시리즈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이라든가 ‘세계에서 가장 넓은’이라든가.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서 세계의 첫 번째를 맞이하는 설렘을 자아내죠. 자동차와 얽힌 ‘세계에서 가장’ 시리즈도 수두룩할 거예요. 무수히 많을, 하지만 항목별로 유일한 시리즈겠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동차 전시관은 오스트리아에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면 그로스글로크너란 산이에요. 해발 3,798m라고 합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전망대에 자동차 전시관이 있어요.

 

거기에 가려면 그로스글로크너 호흐알펜슈트라세라는 유명 고산도로를 올라야 합니다. 그 꼭대기에 휴게소이자 전망대가 있거든요. 전시관은 그 전망대 부대시설이에요. 해발 2,369m에 세워진 전망대 속 자동차 전시관인 셈이죠. 세계에서 가장 높을 만하죠?  

 

전시관이라고 해도 규모가 크진 않습니다. 그 높은 곳에 전시관이 있다는 데 의미를 둘 정도라고 하면 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전시하고자 하는 포부는 그로스글로크너만큼 높아요. 전시 주제가 무려 자동차 역사거든요. 작은 공간에 자동차 발전사를 빙 둘러 나열했어요.

 

자동차 역사를 연도별로 훑은 글과 그림이 한 쪽 벽에 붙어 있어요. 다른 쪽에는 페이턴트 모터바겐 같은 기념비적 모델부터 페라리 같은 수퍼카까지 수많은 자동차를 총 망라해 전시했죠. 정말 총 망라한 수준이에요. 단, 실물 자동차가 아닌 모형 자동차입니다.

 

모형 자동차라고 실망하지 마시길. 모형 자동차 개수와 질이 남다릅니다. 이 정도로 자동차 역사를 훑는 모형 자동차를 한꺼번에 본 경험은 없 거예요. 각 브랜드 대표 모델이 연도별로 전시돼 있어요.

 

작지만 만듦새가 좋은 모형 자동차를 보노라면 관람 자세도 바뀌죠. 보통 전시관에 가면 슥슥, 걸어가며 보잖아요? 이곳에선 발 크기로 거리 재듯 잰걸음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됩니다. 자동으로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게 해요. 그만큼 모형 자동차를 충실하게 모아놨거든요. 

 

1957년 메르세데스-벤츠 300 SL가 눈을 사로잡고, 1961년 재규어 E-타입이 걸음을 붙잡습니다. 1966년 로터스 엘란은 또 어떤가요. 당대를 휩쓴 모델뿐만 아니라 갖가지 자동차를 다 모아놓은 점도 신선했어요.

 

지금도 볼 수 있는 폭스바겐 골프나 미니 쿠퍼 역시 한 자리 꿰찼습니다. 

 

전설 같은 경주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모형 앰블런스나 버스까지 볼 수 있어요. 시대와 브랜드를 넘어 (물론 자동차 역사 기준으로 모았지만) 자동차라는 존재를 모두 담으려고 한 노력이 엿보였죠.

 

모형 자동차 보고 감동하긴 또 처음이었습니다. 원래 귀여운 걸 좋아하기에 모형 자동차가 가득한 공간에 눈을 뗄 수 없었죠.

반응형

모형 자동차만으로 전시관을 꾸미는 게 아쉬웠는지 실물 자동차도 전시해 놓았어요. 클래식 자동차 딱 두 대.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자동차, 슈타이어(Steyr) 100과 피아트 509가 세월 담긴 광채를 빛내며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슈타이어 100은 1934년식, 피아트 509는 1926년식이에요. 단지 클래식 자동차라서 전시해놓은 건 아닙니다. 둘 다 그로스글로크너 호흐알펜슈트라세와 인연이 있거든요. 

 

슈타이어 100은 1934년에 그로스글로크너 고산도로를 첫 번째로 등반(?)한 업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유료도로로 길이 잘 닦이지 않던 시절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드라이버가 고산도로의 매력을 탐하는 건 마찬가지네요.

 

피아트 509 역시 클래식카 랠리에 참가한 차로, 그로스글로크너 호흐알펜슈트라세를 달렸어요. 둘 다 차량 유리창엔 그로스글로크너 호흐알펜슈트라세를 상징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지 않나요? 굳이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전시관을 만들었을까? 처음에 이 정보를 발견했을 때 나 역시 같은 궁금증을 품었거든요.

 

굳이 왜? 하지만 해발 2,369m를 굽이굽이 올라가니 답은 절로 나왔어요.

 

자동차는 결국 길을 달리니까요. 자동차와 길은 물고기와 물처럼 자연스러운 관계죠. 게다가 이곳은 일부러 돈까지 내고 달리는 절경 품은 길입니다. 수많은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명산의 굽잇길을 오갔죠. 자동차와 밀접한 장소란 얘기입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이곳까지 달려오고, 앞으로도 올 것입니다. 자동차뿐일 리 있나요. 모터사이클은 물론 산악자전거, 심지어 트랙터까지 달렸거든요. 수많은 이벤트성 퍼레이드가 이 고산도로에서 열리기도 합니다. 인기 좋은 드라이브 코스와 자동차 전시관, 딱히 이상할 게 없잖아요? 의문이 풀리자 의미가 생깁니다.   

이런 박물관 하나쯤 있어도 괜찮잖아요?

 

지금까지 '더로드쇼'였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