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더로드쇼' 김종훈입니다.
요즘 자동차 얘기는 열에 아홉은 SUV인 거 같아요. 주목받는 신차도 거의 SUV고요. 새로 라인업을 살찌우는 모델도 SUV입니다. 브랜드마다 더 작게, 혹은 더 크게 SUV를 만들어 내놓고 있죠. 공개되면 또 관심도 많이 받아요.
SUV가 대세로 떠오른 지는 꽤 됐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하던 말인데 여전히 통용됩니다. 아직도, 오히려 더 SUV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과거에는 안 만들던 브랜드가 만들어서 이슈를 몰았다면, 이젠 SUV 라인업이 촘촘해져서 관심을 유발합니다.
소형 SUV가 한 차례 이슈를 선점했죠. 아직도 뜨겁습니다. 대형 SUV도 새롭게 스포트라이트도 받았죠. 기존에 없던 모델들이기에 주목도가 높습니다. 새로운 취향을 자극하고 시장을 형성하는 데 각 브랜드는 SUV를 전가의 보도처럼 뽑아들죠. 그만큼 반응과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오늘 얘기할 모델 역시 SUV입니다. 그것도 대형 SUV. BMW X7 m50d입니다. BMW SUV 라인업을 위로 확장한 모델이죠.
인상적이었거든요. 작년에 타보고 올해 다시 타봤는데, 두 번 다 좋은 인상으로 남았어요. 제가 큰 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부담스럽잖아요. 작은 차를 좋아하는 성향도 명확하고요. 일로 시승하지만, 일단 자기 기준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죠. 시승하면서 구매자 입장으로 시선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X7 m50d는 이런 성향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냥 X7이 아닌 m50d라서 그랬을 겁니다. X7의 꼭지점에 있는 모델이니까요.
내리면서 이거 갖고 싶네, 하는 자동차였거든요. 스마트키로 잠금 버튼을 누를 때 감탄하게 하는 자동차랄까요. 타면서 느낀 다양한 감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겠죠. 이런 자동차를 타고 온 날은 왠지 들뜹니다. 특히 가격이 높은 모델이라면 성공을 향한 욕구도, 갑자기 치솟기도 하죠.
호감은 무엇보다 덩치와 어울리는 펀치력이 바탕에 깔립니다. 덩치가 크면 아무래도 속도보다는 안락함을 먼저 생각하게 되잖아요? X7도 처음 운전대를 잡으면서 그런 거동을 떠올렸어요. 하지만 너무 낮춰봤네요. 덩치가 커도 BMW라는 걸 잠시 잊었어요.
덩치에 걸맞은 펀치력이 출력으로 드러납니다. 보통 출력이 쾌적하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하다고 얘기하죠. SUV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해서 말한다는 속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X7 m50d는 민첩하다는 말보다는 호쾌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려요. SUV의, 그것도 대형 SUV의 육중한 덩치를 거동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활용했달까요. 묵직한 덩치의 위압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솜털 떨릴 만큼 박력 있게 튀어나갑니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X7 m50d는 거대한 맹수로 돌변하죠. 회전수 높인 가솔린엔진의 날카로움과는 달라요. 온몸의 신경을 자극해서 예민해지는 감각이 아닙니다. 두껍고 묵직하게, 공기를 짓뭉개며 달려 나가는 박력이 터져 나옵니다.
3.0 쿼드터보 디젤 엔진은 최대토크가 77.5kg.m예요. 보통 자동차의 토크가 70kg.m가 넘어가면 압도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거기에 전장이 5미터가 넘고 높이가 1.8미터가 넘는 덩치의 묵직함까지 더해지니 호쾌함이 배가하죠. 자꾸 그 풍요로움에 몸을 싣고 싶어집니다.
처음에는 운전이 재밌을까 싶었어요. 덩치가 큰 만큼 안락하고 느긋하고 편안하게 달릴 거라고 예상했죠. 대형 SUV답게 호령하듯 달리는 맛이 선명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X7 m50d에는, 물론 그런 성격도 품었죠.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자동차를, 그에 걸맞은 펀치력으로 밀어붙이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BMW가 생각하는 대형 SUV의 운전 재미랄까요. X7 m50d를 타면서 BMW의 명확한 성격이 드러나서 새삼 놀랐어요. BMW는 역시 BMW구나, 했죠. 어떤 차종을, 설사 브랜드 성격을 반영하기 힘든 차종을 내놓아도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브랜드 DNA를 이식하는구나, 감탄했죠.
예전에 X6 m50d를 타봤을 때도 감탄했거든요. X6 m50d도 참 호쾌했죠. X7은 더 크고 육중한데도 그 성격을 잘 부여했습니다. 물론 대형 SUV인만큼 예리하게 검을 휘두르는 듯한 운전 재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묵직한 둔기를 막 휘두르는 호쾌함 또한 재미니까요. 그러면서 운전할 때 다루기 쉽기까지 해요. 성질은 다르지만 운전 재미를 살렸다는 점에서 BMW 자동차다웠어요.
레이서 강병휘 선수가 BMW 디자인에 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BMW는 디자인이 멋지다기보다 운전이 재밌어서 디자인까지 멋져 보이게 된다고 했죠.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역동성을 강조한 디자인인 건 맞지만 첫눈에 반할 외모는 아니죠. 하지만 운전하고 나면 호감이 생겨 외관도 멋있어 보입니다. 겉보다 속이 꽉 찬 사람 같아서 호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X7 m50d도 그런 수순을 밟았어요. 처음 X7 m50d를 봤을 때는 디자인이 확 와 닿지 않았거든요. 차체 참 크다, 키드니 그릴이 굉장하네, 이런 정도 반응이었죠. 하지만 호쾌한 주행 성능을 접하고 나니 다시 보이더라고요. 아니, 왠지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더 자세히 보게 됐죠.
키드니 그릴은 확실히 상징적입니다. 디자인 호불호는 물론 있죠. 그럼에도 BMW답게 보인다는 목적은 효과적으로 달성합니다. 특히 X7은 위아래가 높고 좌우가 좁은 형태여서 더 돋보입니다. 차체 크기와 어울리는 부분이 있어요.
곧게 뻗은 세로 선이 흡사 거대한 철문을 연상케 합니다. 대저택 철문 앞에 서면 주눅 드는 것처럼 그 앞에 서면 위압적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차체 크기가 더욱 실감 나니 그 느낌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단지 크다는 것 이상으로 다부져 보이는 점은 득이죠.
SUV처럼 보이는 것도 X7의 장점입니다. 대형일수록 SUV라기보다 미니밴처럼 보이잖아요. 덩어리가 크고 공간을 키우다보니 대형 SUV는 비율이 좋지 않습니다. X7은 나름대로 SUV의 실루엣을 잘 살렸어요. 그냥 부풀리기만 하지 않고 SUV의 각이 살아있습니다.
각 부분 디자인도 크기에 걸맞게 두툼하게 잘 처리했습니다. 크기가 커지면 비어 보일 수밖에 없는데, 비어 보인다기보다는 강인하게 느껴집니다. 세부 요소를 섬세하기보다는 툭툭, 근육의 두터운 질감처럼 표현했어요. 크기가 주는 양감에 어울리는 세부 요소로 매만졌어요.
모델명 레터링도 무심하게 볼드 처리로 툭, 붙였죠. 오히려 이런 부분이 대형이라는 기본 도화지와 맞물려서 나름의 미적 감각을 표현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보고 있으면 은근히 멋이 풍기죠. 대형 SUV의 웅장함을, 건조하지만 분명하게 전달하죠.
반면 실내는 고급스럽게 치장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양한 장식으로 채우진 않았어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고급스럽게 꾸몄죠. 가죽의 힘이 큽니다. 인디비주얼 메리노 가죽으로 두른 시트가 고급스럽거든요. 그 외에도 곳곳에 두툼한 가죽을 둘렀죠. 3열까지 꼼꼼하게 씌운 가죽 시트를 보면 왠지 뿌듯해지죠.
실내 레이아웃은 기존 BMW 방식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두툼한 가죽으로 구석구석 둘러서 고급스런 대형 SUV의 공간을 빚었죠. 천장과 각 필러도 알칸타라로 덮었으니 가죽 아닌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예요. 같은 레이아웃이더라도 소재 차이가 분위기를 사뭇 다르게 합니다.
크리스털 기어 노브도 고급스런 분위기에 일조합니다. 기어 노브는 확실히 실내의 문양 같아요. 요즘에는 버튼식도 늘어났죠. 공간을 더 깔끔하게 하는 데 유용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어 노브는 자동차를 운전하기 직전 제의처럼 만지는 물건이기도 하잖아요? 기어 노브의 형태와 만듦새에 따라서 차량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X7의 기어 노브는 그 지점을 강조합니다. 작고 단단하면서 화려합니다. 고급 지팡이 머리 장식 같아요. 풍성한 가죽과 반짝이는 기어 노브가 BMW의 익숙한 실내 분위기를 사뭇 다르게 전달합니다. SUV 기함이니까 좀 다른 부분이 있어야죠.
전동식 시트도 기함다운 고급스러움을 조성하죠. 2열은 물론, 3열까지 버튼 누르면 스르륵 접힙니다. 작동하는 방식이 즉각적이진 않은데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죠.
트렁크도 위아래로 나뉘어 열립니다. 고급 SUV의 상징 같은 레이아웃이랄까요. 야외에 나가면 열린 하단 트렁크에 걸터앉는 것만으로 괜히 흐뭇해지죠.
이런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BMW가 X7, 그러니까 더 커다란 SUV를 만든 이유죠. 점점 럭셔리 브랜드나 스포츠카 브랜드가 SUV를 만들면서 고급 SUV 시장이 형성됐다는 거죠. 그 시장에서 경쟁할 더 크고 더 고급스러운 SUV가 필요해서 X7을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일견 수긍할 만한 의견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BMW X7 m50d는 가격이 높은데 낮은, 흥미로운 위치에 놓여요. 1억6천만 원이 절대 낮은 금액은 아니지만, 럭셔리 브랜드 SUV에 비하면 낮은 거죠. 그러면서 AS 같은 BMW의 넓은 인프라를 이용할 수도 있고요.
럭셔리 시장에선 오히려 X7 m50d가 아래쪽을 담당할지 모릅니다. 가격 좋고 가치 높은 모델로서 매력을 뽐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대형 SUV가 점점 늘어나는 시장에서 X5 급을 타는 고객들의 소유욕을 자극할 수도 있고요.
X7 m50d를 시승하면서 BMW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어떤 차종을 내놓든 BMW가 지향하는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게 차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점은 칭찬할 만합니다.
커다란 차량은 길고 높아서 운동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에도 BMW는 그 상황을 토대로 운전 재미를 이식합니다. 성격을 고수할 수 있는 기술의 힘이겠죠.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커다란 키드니 그릴이 나중에는 멋져 보일 정도였어요. 그만큼 운전하면서 느낀 호감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뜻이죠. 역시 BMW는 운전하고 나면 더 멋있어 보이는 브랜드 맞습니다. X7 m50d가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새겨줬습니다.
큰 차 좋아하고 여유 있으면 아주 딱...
X7 m50d 유튜브 영상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더로드쇼' 김종훈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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