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음미하게 하는 공간, 볼보 XC90

더로드쇼 2020. 6. 1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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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더로드쇼' 김종훈입니다.

 

오늘의 자동차는 볼보 XC90 T6 인스크립션입니다.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도 올렸습니다. 보시고 구독. :-)

https://youtu.be/E2RvzmfQUfI

오랜만에 다시 탄 자동차가 처음 느낀 호감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런 차보다 아닌 차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만큼 다시 탔을 땐 여전히 호감이 이어지면 더욱 인상적이죠. 볼보 XC90이 그랬거든요.

볼보 XC90은 볼보의 플래그십 SUV죠. 보통 플래그십, 즉 기함은 세단이 대표적입니다. 볼보는 대형 SUV인 XC90이 그 자리를 차지하죠. 물론 세단인 S90도 있지만 XC90만큼 오라를 뿜어내진 않습니다.

플래그십은 크기가 커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죠. 브랜드를 대표하면서 꼭짓점에 놓인 모델로 이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각종 신기술은 플래그십에 우선 적용하는 게 보통이죠. 디자인도 그렇습니다. 기술과 디자인, 이 두 가지가 새로워지면 다른 차로 보이게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플래그십은 브랜드의 또 다른 장을 여는 역할을 하죠. XC90이 그랬던 것처럼요. 모든 플래그십이 새로운 장을 열려고 하지만 다 성공하지는 못하죠. 볼보는 성공했습니다. XC90은 확실히 남달라졌으니까요.

처음 출시했을 때 가격 보고 다들 한마디씩 했죠. 멋지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 거 아냐? 볼보가 너무 꿈꾸는 거 같은데? 이런 우려나 걱정 섞인 반응이 보통이었어요. 그 전에 중요한 지점이 있었죠. 멋지다는 반응. 아마 볼보를 보고 이런 반응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보통 그 전까지 볼보를 보면 튼튼해 보인다, 그래서 오래 타면 괜찮겠다, 어디 한 번 타볼까? 이런 수순으로 반응이 이어졌죠. XC90은 예전 반응과는 확실히 온도가 달랐어요.     

다시 봐도 처음 봤을 때 느낀 신선함이 이어집니다. 그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 세대 XC90을 보면 현행 XC90과 비슷한 부분이 보여요. 비율이라든가, 형태라든가 예전에도 은근히 괜찮았거든요. 즉, 2세대 XC90이 갑자기 하늘에 떨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도 전 세대를 지워 버릴 정도로 2세대 XC90이 강렬했죠. 볼보의 2막을 열기에 충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새롭게 잘 풀어냈습니다. 전 세대를 토대로 세련되게 매만지면서 눈을 홀리는 징표도 넣었죠. 토르의 망치라고 명명한 주간주행등이 대표적이겠죠. 처음에는 피식, 웃었습니다. 볼보가 스웨덴 브랜드이고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니까 연관성이 있긴 한데,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인기 끌던 시기였으니까요. 토르의 망치라는 어감이 왠지 좀 가벼워서 웃기긴 했죠. 그럼에도 귀와 눈에 쏙, 박히는 건 확실했습니다.

전 세대의 고지식함을 걷어내고 부풀릴 땐 부풀리고 날을 세울 땐 세우면서 세련된 느낌을 전체에 흐르게 했어요. 그 변화의 방점으로 토르의 망치가 큰 역할을 했죠. 빛나는, 그러면서 날카로운 형상은 커다란 SUV의 둔한 느낌을 싹 걷어내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상징하는 기호로 기능했습니다. 조금 직설적인 작명법이긴 해도 알기 쉽고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런 점에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셈이죠. 다시 보니 더욱 절묘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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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의 변화도 변화지만, 실내 변화는 정말 극적이었죠. XC90의 실내를 보면 볼보라는 브랜드가 럭셔리를 지향하면서 앞으로 어떤 가치를 전하려는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플래그십다운 선포였어요. 원목으로 실내의 중심을 잡고, 크롬 몰딩이나 하이글로시를 차분하게 배치했죠. XC90의 실내는 아주 섬세하게 가구나 소품을 배치한 정갈한 집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동차 실내를 바라보는 느낌 이상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해요.

단지 디자인을 세련되게 잘했다는 것 이상이었달까요. 창문을 열고 닫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새삼 다르게 느껴졌어요. 손 끝에 닿는 버튼의 촉감이라든지, 창문이 다 닫히기 전 잠시 멈춘 다음에 마저 닫힐 때의  우아함이라든지. 실내 소재의 구성과 비율, 질감과 빛깔을 세심하게 고심했다는 게 느껴졌죠.

요란하게 장식하는 대신 절제하면서 공들인 공간에 있으면 차분한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휴식 혹은 감상하기에 적절하죠. 볼보는 그 감흥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음악을 택했습니다. 볼보 사운드 시스템은 접해본 사람은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공간의 질과 성격을 사운드 시스템으로 더욱 명확하게 했어요.  그러고 보면 볼보의 실내는 청음실의 분위기와도 닮았습니다.

자동차를 먼저 내세우지 않고 휴식하는, 혹은 감상하는 공간으로 구축했습니다. 단지 고급스럽게 만들었어, 정도가 아닌 셈이죠. 명확한 콘셉트가 있었고, 볼보를 통해 뭘 주려고 하는지 알게 했죠. 볼보는 럭셔리를 내세우며, 핵심 가치로 편안하면서도 고상한 공간을 팔기로 했다고 할 수 있어요. XC90은 그 시작을 알린 첫 모델이었죠. 다시 접해도 XC90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했어요. 여전히 느긋하게 쉬고 싶은, 음미하고 싶은 공간을 품었죠. 

 

그래서인지 성능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아요. T6 인스크립션 모델은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품었어요. 2리터가 좀 알뜰해 보이긴 하지만, 트윈터보이기에 효율과 성능 다 챙긴 셈이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5초면 도달합니다. 굼뜬 느낌은 없어요. 밀어붙이면 제법 잘 달리고 끈기도 있습니다. 2톤이 넘는 차체로 대체로 쾌적하게, 때로 짜릿하게 달리죠. 하지만 이내 느긋하게 마음을 풀게 됩니다. 느긋할수록 운전할 때 더 즐거우니까요.

XC90의 거동 특성이 그렇습니다. 밀어붙이다 보면 굳이 뭘, 하면서 속도를 줄이게 되죠. 질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공간에 흩뿌리는 소리를 즐기며 편안하게 타게 되죠. 각 소재 질감이 잘 어우러진 차분한 인테리어는 그 기분을 배가하죠. 느긋하게 이동을 즐기라는 점에서 볼보의 안전 의식을 고차원적으로 구현했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영리하면서 정체성이 또렷하다고 할 수 있죠. 특히 볼보의 SUV나 크로스컨트리의 성격이 여유로움을 강조합니다.

 

볼보의 신형 세단들은 또 달라요. 나름 느긋함보다는 달리는 감각을 뾰족하게 살려서 자극하려고 하죠. 볼보 세단은 다른 시간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 볼보 S60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아무튼 XC90에서 선포한 볼보의 새로운 기조는 아래 모델로 차분하게 흘러들어갔습니다. 크기가 좀 줄었을 뿐 전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만듦새도, 풍기는 분위기도 잘 고수했어요. XC60이 그래서 인기를 얻었겠죠. 그런 통일성 덕분에 볼보가 갑자기 눈에 띄었어요. XC90만 유독 특별했다면 이 정도로 이미지를 재정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XC90을 다시 타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볼보는 이제 세련된 공간을 파는 수준에 이르렀구나, 했죠. 어쩌면 앞으로 자동차가 더 집중해야 할 영역을 볼보는 미리 준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동차가 제공하는 가치 중 공간의 무게가 앞으로 더욱 무거워질 테니까요. 자율주행 시대가 와도 공간으로서 가치는 여전할 겁니다.

오랜만에 다시 탄 XC90은 여전히 처음에 느낀 감흥을 되살렸어요. 내 차가 아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겠죠. 그 사이, 달라진 점이라면 하나 있어요. 가격에 대한 부담이 다소 줄었달까요. 최근 여러 브랜드에서 대형 SUV가 나왔죠. 가격을 보면 볼보 XC90과 엇비슷합니다. 예전에는 몇 없어서 더 높게 느껴지기도 했죠. 그만큼 경쟁 모델이 많아지긴 했지만, 다들 가격도 만만찮아요. 그 사이에서 XC90의 가치가 빛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볼보는, 독보적인 면이 분명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더로드쇼] 김종훈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https://youtu.be/E2RvzmfQU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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